리그 | 프리미어리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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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올레 군나르 솔샤르 | ||||
2019-20 | 3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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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풋볼 클럽(틀:Llang)은 잉글랜드 맨체스터에 있는 잉글랜드 프로 축구 구단이다. . 1964-65 시즌 이래 단 1번의 시즌을 제외하고는 잉글랜드에서 최다 평균 관중 . 기록을 차지해왔다. 프리미어리그 개편 당시 원년 구단이었으며, 현재까지 . 계속 소속되어 있다. 프리미어리그 최다우승 • 잉글랜드에서 . 유일하게 트레블을 달성했다.
구단은 1878년 3월5일 랭커셔 요크셔 철도의 뉴턴 히스 지부 실업팀인 뉴턴 히스 LYR FC(Newton Heath LYR F.C.)로 설립되었고 , 1902년 4월 2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개명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2010-11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19번째 1부 프로축구리그 우승을 기록해, 기존에 리버풀 FC가 갖고 있던 기록과 같은 기록을 경신했다. 구단은 1991-92 시즌부터 2012-13 시즌까지 단 한 차례도 3위 아래의 순위로 시즌을 마친 적이 없을 정도로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래 꾸준한 성적을 거두어왔다. 또한 구단은 잉글랜드 FA컵에서 총 12회 우승하여 아스널 FC 다음으로 많은 우승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68년에는 에우제비오의 벤피카를 꺾고 잉글랜드 축구단으로는 최초로 유러피언컵을 들어올렸다.[1] 1999년에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전에서 나온 극적인 역전승으로 두 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 해 UEFA 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잉글랜드 FA컵 3개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하여 이른바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1990년대 후반 이래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가장 부유한 구단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전 세계 축구단 가운데 최고의 수입 기록을 지속적으로 기록해 왔다. 유럽의 저명한 프로축구단들의 모임인 G-14의 회원이기도 하며,[2] 2007년 포브스의 세계 스포츠 구단 평가에서는 14억 5300만 달러의 평가를 받아 전 세계 축구단 중에서 1위를 기록했다.[3] 그리고 단은 2017년 1월 19일(한국 시각) 2015-16 시즌에 6억 8,900만유로(약 8,62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여, 11년 연속 연간수익 1위를 달성한 레알 마드리드를 제치고 연간수익 1위에 등극했다. 그리고, 2017년 7월 13일(한국시각)에 36억 9,000만 달러(약 4조 2,176억원)의 구단 가치를 기록해 최고의 가치를 지닌 축구 클럽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2018년 5월 23일(한국 시간)에 글로벌 회계·컨설팅 회사인 KPMG로부터 지난해보다 5% 상승한 32억 유로(약 4조871억원)로 레알 마드리드(29억 유로)와 FC 바르셀로나(28억 유로)를 제치고 유럽에서 가장 비싼 클럽으로 선정되었다.
현재 감독은 올레 군나르 솔샤르이고, 주장은 해리 매과이어이고 부주장은 브루노 페르난데스이다.
역사[]
맨유의 역사는 1878년 랭커셔 요크셔 철도의 뉴턴 히스 지부 실업팀인 뉴턴 히스 LYR F.C.(Newton Heath LYR F.C.)의 설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4] 유니폼은 지금과는 달리 녹색과 노란색을 좌우 대칭으로 넣은 유니폼이었다. 1892년 철도 지부와의 관련을 끊고 “Newton Heath F.C.”로 명칭을 변경, 독립적인 클럽으로 변모하였고, 풋볼 리그(The Football League)에도 참가하였다. 1902년 2500파운드의 부채로 인해 클럽이 위기에 빠졌는데, J. H. 데이비스의 투자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클럽의 주장인 해리 스태퍼드가 그의 애견 세인트버나드를 기금 모금 행사에서 자랑했고 데이비스는 개를 사기 위해 스태퍼드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클럽의 주장은 제안을 거절했고 대신 데이비스가 클럽에 투자하기를 설득했다고 한다. 한편, 클럽의 명칭과 관련하여 “맨체스터 센트럴(Manchester Central)”과 “맨체스터 셀틱(Manchester Celtic)”이 제안되기도 했는데, 이탈리아계 후손인 루이스 로카(Louis Rocca)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안해 그것으로 결정되었다. 1902년 4월 2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의 개명이 확정되었다.[5] 데이비스는 기존 유니폼의 색인 녹색과 금색 대신에 붉은색과 흰색으로 바꾸었다.틀:출처
1902년 9월 28일 제임스 웨스트가 감독직을 사임한 이후 어니스트 만그날이 사무장으로 임명되었고 1부 리그로 팀을 승격시킬 임무를 맡게 되었다. 첫 시도는 디비전 2의 5위로 그쳤다. 만그날은 클럽에 새 얼굴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해리 모거와 딕 더크워스, 존 피켄 등을 영입했고 400파운드를 들여 찰리 로버츠를 데리고 왔다. 결국 2부 리그 1905-06 시즌에서 2위를 차지하여 1부 리그로 마침내 승격하였다. 1908년에는 클럽 역사상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FA컵을 최초로 우승하였다. 1910-11 시즌을 우승하였고 그 와중에 올드 트래퍼드로 홈구장을 이전하였다. 1910년 2월 19일 리버풀 FC를 상대로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첫 경기를 치렀다. 1922년에는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일을 겪기도 하였는데 1925년에 1부 리그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다시 1931년에는 강등하는 등 요요 클럽(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는 팀)으로 불리기도 했다. 1938-39 시즌에서 14위를 차지한 이래로 1부 리그에 안정적으로 머물기 시작했다.틀:출처
1945-1969 (버즈비 시대)[]
1945년 맷 버즈비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등장하면서부터 자신의 선수 선발권 및 선수 이적, 훈련 방법 등에서의 권한을 요구하였다(그가 바로 직전에 머물렀던 리버풀에서는 이런 요구가 묵살되고 해임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고 그에게 권한을 맡기었다. 버즈비가 성사시킨 첫 계약은 선수가 아니라 수석 코치 지미 머피였다. 1947, 48, 49년 2위를 차지하고 1948년에는 FA컵을 우승하는 등 상당한 성적을 거두었다. 버즈비는 클럽이 육성하고 있는 유스 팀 선수들에 주목했고 1956년에 팀 평균 나이가 불과 22세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시즌 103골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어린 선수를 중용하는 정책은 클럽 역사의 전환점을 가져다주었고 이 선수들을 ‘버즈비의 아이들’(Busby Babes)이라고 불렀다.[6] 버즈비는 버즈비의 아이들과 함께 공격 축구로 맨체스터의 팬층을 확고하게 구축했다.[7]
1958년 2월 6일 뮌헨 비행기 참사가 발생했다.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유러피언 컵 준결승행을 확정하고 귀국하던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가 중간지 뮌헨에서 연료 공급을 받고 이륙을 하는 도중 이륙 실패로 공항의 경계벽과 충돌하였다. 이 사고로 선수 8명과 코칭스태프를 포함해 총 15명이 사망하였다. 2번의 이륙 시도가 이미 있었고, 3번째 시도에서 이륙에 필요한 충분한 속력을 내지 못해 이륙에 실패했다. 버즈비 감독도 비행기에 탑승하여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나 구조되었다. 7명의 선수는 사고 당시 사망했고, 중상을 입은 선수 한 명은 2주일 후에 병원에서 사망했다.틀:출처
사고 이후 유러피언 컵을 포기할 것이라는 루머가 나돌았지만, 부상 중인 버즈비를 대신해 지미 머피가 임시 감독직을 맡고 대회에 계속 참가하였다. 참사에도 불구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FA컵 결승전까지 올랐다. 196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버즈비가 다시 팀을 정비하였고 데니스 로 등을 영입하고 젊은 선수 육성에 주력했다. 그 결과로 조지 베스트라는 맨체스터의 영웅을 탄생시켰다.[9] 1963년 FA컵을 들어 올렸으며, 1964년 시즌에는 2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1965년과 1967년에는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1968년에는 벤피카를 4:1로 꺾고 드디어 유러피언 컵을 들어 올렸다.[10] 이는 뮌헨 비행기 사고 10년째가 되는 해였고 잉글랜드 클럽 사상 최초로 해당 대회를 우승하였다. 1960년대의 버즈비 시대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유럽 올해의 선수(발롱도르)를 3명이나 배출하는 기록을 올렸다. 1964년에는 데니스 로, 1966년에는 보비 찰턴, 1968년에는 조지 베스트[11] 가 수상자였다. 1969년 버즈비는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리저브팀 감독이자 전 맨유 선수였던 윌프 맥기니스가 감독직에 올랐다.
1969-1986[]
버즈비의 시대는 뒤로하고, 새로운 감독 윌프 맥기니스 체제에서 1969-70 시즌에 실망스럽게 8위에 머물렀고 1970-71 시즌에는 실망스러운 시즌 초반 성적으로 결국 리저브팀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사임했던 버즈비가 6개월간 팀을 잠깐 맡았는데 결국 1971년 여름에 그는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셀틱을 유러피언 컵 정상에 올려놓은 존 스타인(Jock Stein)이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할 뻔했으나 계약 성사 직전에 그의 포기 의사로 결국 프랭크 오패럴(Frank O'Farrell)이 감독직에 올랐다. 하지만 18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1972년에 토미 도허티(Tommy Docherty)가 그의 뒤를 이었다. 도허티는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했으나, 1974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결국 강등되었다. 이 무렵에 골든 트리오라고 불렸던 조지 베스트와 데니스 로, 보비 찰턴이 팀을 떠났다.틀:출처)
강등 직후 다음 시즌에 곧장 1부 리그로 복귀하였으며, 스티브 코펠(Steve Coppell)이 이 시즌 막바지에 데뷔하였고 FA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1977년에는 리버풀을 2:1로 꺾고 FA컵을 들어 올렸다. 도허티의 이와 같은 성공과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불륜 사건에 휘말려 해임되었다. 데이브 섹튼(Dave Sexton)이 1977년 여름에 그의 자리를 이었고 수비적인 전술을 구사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버즈비와 도허티의 공격 전술을 선호했던 서포터들로부터 인기를 잃었고 우승에는 못 미치는 성적으로, 해임 직전의 7연승에도 불구하고 1981년에 감독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론 앳킨슨(Ron Atkinson)이 감독 자리에 올랐고 웨스트 브롬에서 브라이언 롭슨(Bryan Robson)을 당시 잉글랜드 이적료 기록을 깨면서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데리고 왔다.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83년, 1985년 FA컵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1985-86 시즌 리그 초반 10연승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리버풀에 내주고 말았고 다음 시즌에는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강등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결국 앳킨스는 성적 부진의 책임으로 해임되었다.틀:출처)
1986-2013 (알렉스 퍼거슨 시대)[]
2013-현재[]
알렉스 퍼거슨이 2012-13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다음날 퍼거슨 감독의 뒤를 이어 11년 간 에버튼을 이끈 데이비드 모이스 감독과 6년 계약을 맺었으며 7월 1일부터 퍼거슨 경을 대신해 감독직을 수행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모예스 부임 이후 프리미어리그 타이틀 방어에 실패하고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주어지는 4위안에 들지 못하며 1995-96년 이후 처음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 자격을 얻지 못하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2014년 4월 22일, 결국 모예스가 전격 경질되었으며 모예스의 뒤를 이어 팀의 레전드 라이언 긱스가 임시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선수생활도 같이 병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맨유는 리그를 7위로 마감하며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는데에도 실패하게 되었는데, 이는 1990년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처음으로 유럽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것이였다. 2014년 5월 19일, 경질된 데이비드 모예스와 임시 감독인 라이언 긱스의 뒤를 이어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출신의 루이 판 할이 3년 계약을 맺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임시 감독이였던 라이언 긱스를 팀의 수석코치로 임명하였다.
판 할의 부임 첫 시즌을 앞두고 맨유는 안데르 에레라, 루크 쇼, 디 마리아, 라다멜 팔카오 등 대규모의 선수들을 영입하며 시즌을 준비하였고, 결국 프리미어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면서 1시즌 만에 챔피언스리그에 다시 복귀하게 된다, 그러나 반 할의 두 번째 시즌, 멤피스 데파이, 슈나이덜린, 슈바인슈타이거 등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금액으로 많은 선수들을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면서 5위로 시즌을 마치며 3시즌 연속 우승 경쟁에서 밀렸으며 1시즌 만에 복귀한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게 된다. 하지만 FA컵에서 크리스털 팰리스를 꺾고 12년 만에 FA컵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알렉스 퍼거슨 경의 은퇴 이후 팀의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퍼거슨 경 은퇴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판 할은 맨유 감독직에서 해임되었으며 2016년 5월 27일. 첼시,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조세 무리뉴가 구단과 3년 계약을 맺으면서 감독을 맡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지휘하였다.
무리뉴가 맨유 감독으로 부임한 첫 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에릭 바이, 헨리크 미키타리안, 폴 포그바를 영입하면서 리그에선 6위를 기록하였지만 FA 커뮤니티 실드, 유로파리그, EFL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챔피언스리그 본선에도 진출하게 된다. 이 시즌 웨인 루니는 맨유에서 통산 250호 골을 터뜨려 바비 찰턴경을 제치고 맨유의 역대 득점 1위에 올랐으며 시즌이 끝난 뒤 팀을 떠나 친정팀인 에버튼으로 복귀하였다. 2017-18 시즌을 앞두고 맨유는 로멜루 루카쿠, 네마냐 마티치, 빅토르 린델로프 등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하였고 부임하는 팀마다 2년차에 반드시 우승을 차지하는 무리뉴 감독의 징크스 덕분에 많은 기대를 안고 시즌에 들어갔다. 하지만 막강한 자금력과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도력을 앞세운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의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인해 리그 2위를 기록하였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세비야에게 16강에서 탈락하면서 모리뉴 감독 데뷔 이후 2년차 시즌 중 가장 아쉬운 성적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18-19 시즌, 선수 영입과정에서 발생한 무리뉴와 구단 보드진과의 갈등으로 인해 시즌 시작 전부터 잡음이 일기 시작하더니 시즌 개막 후 2018년 8월 28일(한국시간 새벽)에 있었던 토트넘과의 리그 3라운드 홈 경기에서 0-3 대패를 당해 홈 경기 역사상 굴욕적인 3골 차 패배를 당해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이후,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하여 3연승을 내달렸다. 그리고, 2018년 9월 22일(한국시간 밤 11시)에 있었던 울버햄튼과의 홈 경기에서 프레드가 맨유 소속 데뷔골을 기록하며 클럽 통산 500번째 득점자로 이름을 남겼지만 1-1 아쉬운 무승부를 기하였다. 하지만, 2018년 9월 26일(한국시각 새벽)에 있었던 카라바오 컵 경기에서 과거 무리뉴 제자였던 프랭크 램파드가 감독으로 이끄는 더비 카운티에게 승부차기에서 7-8로 패하여 자존심을 구겼다. 그 후로 무리뉴와 선수들의 불화설, 내부분열 등 잡음으로 끊이지 않았던 맨유는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한 4경기 동안 승리를 거두지 못하다가, 2018년 10월 7일 새벽 1시 30분(한국 시간)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뉴캐슬과의 리그 홈 경기에서 3-2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 날 무리뉴는 커리어 통산 400승 고지에 올랐다. 그 이후, 불화설과 내부 분열 등 잡음을 수습한 맨유는 최근 들어 역전승을 많이 거두어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무패를 달렸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선 H조 2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 후에도 불화설과 성적 부진을 거듭하였고 결국 12월 17일에 열린 선두 리버풀과의 더비 매치 원정경기에서 경기 내용까지 밀리며 3:1로 패하면서 리그 선두 리버풀에 19점 차로 밀리게 되자, 구단 수뇌부들은 2018년 12월 18일(한국시간)에 무리뉴를 경질함으로써 무리뉴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 후, 새로운 정식 감독을 찾을 때까지 맨유의 레전드 공격수이자 노르웨이의 몰데 FK의 감독인 솔셰르가 임시 감독을 맡아 남은 시즌을 치르기로 하였지만, 솔샤르가 부임한 이래 17경기 동안 14승 2무 1패를 기록하는 호성적에다 2019년 3월 7일(한국시간 새벽)에 있었던 파리 생제르맹과의 2차전 경기에서 3-1 승리를 거둬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5시즌 만에 8강에 오르는 파리의 기적을 선보여 2019년 3월 28일(한국시간)에 맨유의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였다.
하지만, 솔샤르가 정식 감독 임명 직후, 성적은 급격하게 하락하여 시즌 6위를 마감하였고, FA컵에서도 울버햄턴에게 1-2로 패하여 시즌을 무관으로 마감했다.
2019-20 시즌을 앞두고, 맨유는 루카쿠와 에레라 등을 내보내고, 스완지 시티에서 측면 공격수인 대니얼 제임스를 영입하고,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뛰었던 풀백 에런 완비사카를 영입하였다. 그리고, 지난 시즌 동안 취약 부분인 중앙 수비 자리를 레스터 시티에서 뛰었던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의 해리 매과이어를 역대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면서 영입에 성공하였다. 2019년 8월 12일(한국시간)에 있었던 첼시와의 리그 홈 개막전 경기에서 무려 25년 만에 4-0 대승을 거두었고, 리그에서는 54년 만에 승리를 거뒀다.
그 후, 겨울 이적 시장 때 스포르팅에서 뛰고 있던 포르투갈 국가대표 미드필더인 브루누 페르난드스와 중국 상하이 선화에서 뛰고 있던 나이지리아 공격수 오디온 이갈로를 데려온 맨유는 브루노와 이갈로의 효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여 11경기 무패를 달렸다.
우승 기록[]
리그[]
- ● 우승 (3, 최다 기록): 1994-95, 1995-96, 1998-99
컵[]
- FA컵
- ● 우승 (12): 1908-09, 1947-48, 1962-63, 1976-77, 1982-83, 1984-85, 1989-90, 1993-94, 1995-96, 1998-99, 2003-04, 2015-16
- ● 준우승 (8): 1956-57, 1957-58, 1975-76, 1978-79, 1994-95, 2004-05, 2006-07,2017-18
- FA 커뮤니티 실드
- ● 우승 (21, 최다 기록): 1908, 1911, 1952, 1956, 1957, 1965*, 1967*, 1977*, 1983, 1990*, 1993, 1994, 1996, 1997, 2003, 2007, 2008, 2010, 2011, 2013, 2016
- ● 준우승 (9): 1948, 1963, 1985, 1998, 1999, 2000, 2001, 2004, 2009
국제 대회[]
유럽 대회[]
- ● 우승 (3): 1967-68, 1998-99, 2007-08
- ● 준우승 (2): 2008-09, 2010-11
- ● 우승 (1): 2016-17
- ● 우승 (1): 1991
- ● 준우승 (3): 1999, 2008, 2017
세계 대회[]
- ● 우승 (1): 2008
- 5위 (1): 2000
- 인터콘티넨털컵
- ● 우승 (1): 1999
- ● 준우승 (1): 1968
친선 대회[]
-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
- ● 우승 (1): 2014
선수단[]
현재 선수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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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선수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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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저브와 아카데미[]
코칭스태프[]
- 감독 : 올레 군나르 솔셰르
- 수석 코치 : 마이크 펠런
- 1군 코치 : 마이클 캐릭, 키에란 맥케나, 마크 뎀프시
- 골키퍼 코치 : 리차드 하티스, 크레이그 모슨
- 체력 코치 : 파울로 가우디노
- 보조 코치 : 히카르토 에크라드
- 트레이닝 생리학자 : 존 피코트
- 물리치료사 : 리차드 메론
- 팀 닥터 : 토니 길
- 영양사 : 마이크 도넬리
- U-23 감독 : 닐 우드
- U-23 수석코치 : 퀸턴 포춘
- 아카데미 코치 : 니키 버트
- 스카우터: 게라도 구즈만[12]
- 1군 선수 육성 담당 : 존 머르터프
기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대 감독[]
과거 맨유에서 뛰었던 선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진한 글씨는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뛰는 선수들이다.
메이저 대회에 (FIFA 월드컵,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출전했던 선수들로만 작성하였다.
- 보비 찰턴 (1956-1973)
- 브라이언 롭슨 (1981-1994)
- 피터 비어슬리 (1982-1983)
- 폴 인스 (1989-1995)
- 앤디 콜 (1994-2002)
- 니키 버트 (1992-2004)
- 게리 네빌 (1992-2011)
- 폴 스콜스 (1992-2011, 2012-2013)
- 데이비드 베컴 (1992-2003)
- 필 네빌 (1992-2005)
- 웨스 브라운 (1996-2011)
- 테디 셰링엄 (1997-2001)
- 리오 퍼디낸드 (2002-2014)
- 웨인 루니 (2004-2017)
- 벤 포스터 (2005-2010)
- 마이클 캐릭 (2006-2018)
- 오언 하그리브스 (2007-2011)
- 대니 웰벡 (2008-2014)
- 마이클 오언 (2009-2012)
- 애슐리 영 (2011-2020)
- 크리스 스몰링 (2010-2020)
- 필 존스 (2011- )
- 제시 린가드 (2011- )
- 루크 쇼 (2014- )
- 마커스 래쉬포드 (2016- )
- 해리 매과이어 (2019- )
아래의 기록은 2020년 10월 1일 기준의 기록이므로, 현역 선수(굵은 글씨)의 경우 시간의 진행에 따라 기록의 변동이 있을 수 있다.
최다 출장 기록[]
최다 득점 기록[]
역대 주장[]
맷 버즈비 경 올해의 선수[]
기타[]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팬들은 그들의 팀을 ‘유나이티드’(United)로 부르기도 한다. 한편, 대한민국에서는 ‘맨유’라고 줄여 부르기도 하며, 중국에서는 曼聯(màn lián)으로 부른다.틀:출처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별명은 붉은 악마들(Red Devils)이다.[13]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대한민국 출신 선수에는 No.13 박지성(Ji sung Park)이 있다.
관련 항목[]
네임드 팬[]
- 우사인볼트 (前육상선수)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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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 틀:언어링크 Manchester United win 11th FA Cup
- ↑ 유럽축구 G-14 해체, ECA 창설, 뉴시스, 2008년 1월 16일.
- ↑ Forbes, Special Report Soccer Team Valuations
- ↑ 맨유, 그 영광의 시작, 풋볼위클리, 2007-10-19.
- ↑ 맨유 새 유니폼 발표 … 박지성, 루니·호날두와 나란히, 스포탈코리아, 2007-06-30.
- ↑ 루니 "언젠가는 맨유 주장되길 바라", 골닷컴, 2007년 11월 26일.
- ↑ 프리미어리그 이야기 - 맨유엔 50년 전 ‘위대한 전설’이 있다, 동아일보, 2008년 2월 6일.
- ↑ 50년전에 멈춰선 시계, 나비뉴스, 2008년 1월 29일.
- ↑ 명장과 악동의 미묘한 함수관계 '조지 베스트 증후군', 일간스포츠, 2007년 6월 9일.
- ↑ 맨유 성패 가를 ‘트로이카’…시즌 첫 가동, 데일리안, 2007년 9월 19일.
- ↑ 조지 베스트, "오웬 버린 레알 마드리드 후회할 것", OSEN, 2005년 9월 1일.
- ↑ 틀:뉴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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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언어링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 변천사
외부 링크[]
틀:위키공용분류 틀:포털
- 틀:언어링크 틀:공식 웹사이트
- 틀:언어링크 틀:페이스북
- 틀:언어링크 틀:트위터
틀: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틀: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선수 명단 틀: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틀:G-14 틀:유럽 클럽 협회 틀: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틀:UEFA 유로파리그 우승팀 틀:UEFA 컵위너스컵 우승팀 틀:UEFA 슈퍼컵 우승팀 틀:인터콘티넨털컵 우승팀 틀:FIFA 클럽 월드컵 우승팀 틀:전거 통제